우리 민족이 넘어야 했던 3고개
우리민족이 넘어야 했던 3고개
김상철
우리나라의 국토는 70%이상이 산이다. 산이 많다는 것은 고개가 많다는 것과 같은데, 지금은 길이 많이 생겨나면서 터널이 그만큼 많이 생겨난다. 고개와 터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우리의 미래는 과거로 비롯해서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현재를 지남에 있어 지금의 편함만을 추구하다보면 우리의 미래가 어두운 터널 속과 같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다.
우리민족에게는 3개의 고개를 넘고 살아야 했던 숙명을 지니고 있었고 민요에 나타나는 고개의 표현을 소개하면 감칠맛 나는 미학이 담겨있다. 먼저 숙명적으로 넘어야 했던 3대 고개를 소개하면 ‘보리고개’와 ‘아리랑고개’ 그리고 ‘만날고개’가 조선시대 선조들이 넘어야 했던 3개의 고개였던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넘기 힘들었던 고개가 바로 보리고개였는데, 흉년이 들면 풀뿌리, 나무껍질 등으로 목숨을 연명해가다 이 보리고개를 넘지 못해 죽음을 맞기도 하였던 가장 고통스런 고개였다.
아리랑 고개는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별의 고개, 슬픔의 고개였다. 이 아리랑 고개는 민족의 수난을 말해주는 그런 고개이기도 하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서 근세기에 다른 민족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정책이 이땅을 질식시키기 시작한때부터라고 생각된다. 즉, 이 나라의 온 백성이 일제의 억압에 찌들린 삶을 아리랑으로 절규하면서, 특히 징용이나 징병, 정신대로 끌려간 조선의 민중들이 일본, 동남아, 만주의 전쟁터나 탄광, 토굴, 위안부막사에서 조국을 그리며 불렀던 노래가 아리랑이며, 따라서 우리 민족의 상징적 노래로 타민족에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투사들에 의해 불리우진 광복군 아리랑도 같은 예가 되겠으며, 세계 각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조선인들의 입에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민족의 비운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깊이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아리랑을 통해 사랑과 이별, 탄식, 저항, 울분, 그리움 등 당시의 민족적 감정과 정서를 그대로 표출하였는바, 나라도 땅도 님도 빼앗긴 채 많이도 불렀던 노래의 하나가 바로 아리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아리랑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문전앞 옥토는 어찌하여 쓸만한 땅때기 신작로 된다.
<후렴>아리랑~
일깨나하는놈 부역질가고 아깨나 낳을년 갈보질간다
<후렴>아리랑~
아리랑 고재에다 정거장 짓고 우리님 오시면 붙잡아나볼까
<후렴>아리랑~아리랑 고개는 별고개가 넘어갈 적 넘어올 적 눈물이 난다.
<후렴>아리랑~
청천에 뜬달보고 무정타마소 정든님은 저달보다도 더무정하다.
<후렴>아리랑~
간다 못간다 얼마나 울었나 정거장(십작로) 마당이 한강수된다
위의 가사외에도 전국적으로 50여종에 2천여수가 넘는 다양한 아리랑곡에 구전되고 있으며 건국이후 약육강식의 생존논리에 희생되었던 순박한 백의민족이 처녀와 노비를 공물로 중국과 주변강대국에 갖다 바치거나, 또는 수많은 전쟁, 만리장성과 경복궁 건립같은 국내외의 강제 부역 동원 등으로 인한 집단 이별을 수없이 겪으면서 생겨난 민족의 이별곡이자 기다림의 노래이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널려있었던 아리랑 고개는 바로 집단 이별의 고개였음을 깨닫게해준다. 또한 이 노래가 민족의 노래로 정착하게된 배경은 수많은 ‘민족의 생이별’의 역사에서 찾고싶다. ‘아리랑 쓰리랑’은 바로 생이별의 아리고 쓰린 민족의 마음을 읊은(노래한)것이다.
3번째의 고개는 만날고개인데 앞의 보리고개와 아리랑고개와는 반대로 그야말야 희망과 기쁨의 고개였다. 이 만날고개는 바로 시집살이의 갇힌 삶에서 물꼬를 트는 희망의 고개였으며, 단절된 인륜의 정을 잇는 기쁨의 고개였다.
옛 여성들은 고달픈 시집생활을 하면서도 친정집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였다. 마음대로 친정집에 갈 수도 없었으며, 친정집에서도 출가외인이라하여 출가한 딸이 자주 친정집에 드나드는 것을 삼가도록 하였다. 며느리에게 친정집은 지척이 천리였다. 보통 시집을 삼년간 살고난 뒤에 시가에서는 며느리를 친정집에 보내는데, 이때는 보통 첫 아기를 낳은뒤다. 즉, 시집식구와 한동아리가 되기 위해 3년을 벙어리, 귀머거리로 살아야 되는 모양이었다. 이후 며느리들은 일년에 한 번쯤 ‘근행’이라하여, 일이 없는 봄철이나 추석 전후에 친정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근행이란 본집의 어버이를 근친하기 위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이 근행으로 시집살이하던 며느리들은 시집살이의 노동에 지친 심신을 며칠 쉴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근행날을 받은 새색시 며느리들은 ‘물동이이고 대추나무 쳐다보고 웃는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농촌의 풍속을 노래한 농가월령가의 8월을 보면, 근친하러가는 며느리에 대해 이렇게 읊고 있다.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갈제
개잡아 삶아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장옷 반물(남빛)치마 차려입고 다시보니
여름(농사)지어 지친 얼굴 소복이(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기지개)펴고 놀고 오소.
시집에서도 친정집으로 근친가는 며느리에 대해서 넉넉한 예우를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시집살이, 농사일에 지친 며느리를 푹 쉬도록 배려를 하였다. 이처럼 일년에 한번쯤 친정집으로 갈 수 있는 ‘온보기’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게 할 수 없거나 어려울 때에는 ‘만날고개’에서 ‘반보기’를 하였다. 즉, 며느리와 친정식구들이 친정집과 시가집 중간지점에서 서로 만나 반나절쯤 회포를 푸는 것을 ‘반보기’라 하였다. 또, 반보기는 서로가 만나러 오고가는 왕복시간이 한나절의 반이 걸린다는 뜻과 실컷 하루종일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의 뜻이 함께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보기 장소는 주로 고개마루나 중턱의 놀기 좋은 장소가 되었는데 명칭으로는 만날고개, 또는 애미고개 등으로 불리우고 최근에는 만날고개에서 지역축제들이 부활돼 추석 후에 수만군중들이 모여 민속놀이로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며느리들은 이 만날고개에서 꿈에 그리던 친정어머니를 비롯해 고향의 옛 친구들, 그리고 헤어진 이웃사촌들과 함께 만나 시집살이 얘기 등 정담을 나누며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서로 미리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추며, 회포를 풀기도 하였다.
이러한 근행 풍속이나 만날고개의 반보기와 같은 풍속은 바로 시집살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풍속은 ‘출가외인’이라는 단절을 뚫고서 서로 만나야 된다는 핏줄의 본능이 꽃피운 것이다. 특히 어미의 품에서 떠나온 며느리가 모정을 쫓는 마음에서 꽃피운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란 고향땅에 어미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 더욱 가보고 싶고, 가보지못하면 중간에서 만나기라도 해야겠다는 본능은 시집살이의 굴레가 아무리 엄하고 모진들 끈끈한 모녀간의 핏줄을 끊을 수 없어 이런 풍속이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봄에 가면 ‘화전놀이’가 되고 여름에 가면 ‘탁족’이 되고 가을에 가면 ‘단풍놀이’가 되는 현재의 모습이 예전에 해왔던 우리 선조들의 풍속에서 유래되고 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만날고개에서의 회포를 풀고 또 일상생활로 되돌아간다.
민요에 나타나는 고개에 대한 묘사수법을 보면 익산지역의 등짐노래는 조공을 바치거나 짐을 지어 나를 때 부르는 노래인데 가사를 보면
<후렴> 아아어~ 어허~어허 에헤야하
하아어~어허~ 에헤
바늘같은 허리에다 태산같은 짐을 지고
이 고개를 ~~~
어이 넘울을 꺼나
고개가 긴 고개인 경우 ‘이 고개를’ 길게 빼어서 소리를 한다. 그러다가 ‘어이 넘을꺼나, 넘을 것이 까마득한 것을 소리가 대신 넘어준다
진도 아리랑에선 이런 고개를 넘어본다.
문경세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왠고~갠가,’에서 고~~ 구불구불한 고개 표현을 해준다. 그리고 뒤에 구부야 구부구부하고 해석해준다
상주아리랑에선 <후렴1>과 <후렴2>로 나뉘는데
<후렴1>에서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편하게 넘어감
<후렴2>에서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에서는 높은고개라서 높게 질러 고개를 표현한다.
이렇게 상황에 맞게 다양한 고개의 표현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간지방의 민요를 메나리 소리라고 하는데 이말은 ‘뫼놀이’에서 파생된 말로써 뫼(산)에 놀이가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산의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산을 굽이 감돌기도 하고 산정상을 향해 구름이 솟구쳐 오르듯이 힘차게 질러 올라가는 표현과 산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모양 반복되어지는 선율 등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밭농사로 농사를 지으며 공동노작이 아니라 혼자서 민요선율속에 산의 정서가 배어나오고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다의 물결을 헤치며 힘차게 노동하는 힘찬 노동의 소리가 물의 출렁거림처럼 흘러나오고 (지면으로 민요의 표현수법을 설명하기가 어려움이 있어 다음에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실연을 해가며 설명해 드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각설하고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만...
이렇게 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밭농사 위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공동노작보다 혼자서 노래를 벗삼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정이 그립고 쓸쓸하고 애잔한 정서가 배어나온다. 반면 평야에서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유창하게 들판을 가로지르는 소리(통성으)로 노래하고 공동노작을 통해 호흡 맞춰 노래하며 농사를 짓는다. 이런 노동행위를 통해 공동체성을 느끼고 공통으로 살아가는 사회성을 배우고 나보다는 ‘우리’라는 문화를 노래하며 하나됨을 느낀다. 또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다의 거센 파도를 헤치며 힘차게 노동하는 힘찬 노동의 소리가 구호처럼 외치고, 물을 출렁거림처럼 노래소리가 출렁거린다.
나무를 지어 나르는 ‘목도소리’나 돌을 깨는 일이나 힘든 일을 할때의 소리들은 모두 구호성으로 외친다.
노래 뿐만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힘들수록 구호를 외쳐댄다. 노동자들의 삶이 착취를 당할 때도 노동조합을 통해 구호 외쳐댄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도심에 사는 매미의 소리를 들어보라 그들은 숲속에서 살아가는 매미들보다 2배 이상 크게 외쳐 울어댄다.
각설하고 예천아리랑에선 이런 가사가 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 산천이 좋아서 나 여기왔나 임보기 좋아서 나 여기왔지
●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고개 임자 당신 넘을 고갠 한고개라
이 가사는 산천이 좋아 떠도는 것이 아니고 님따라서 다니는 것이 좋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얘기와 아리랑 고개가 열두고개라는 얘기는 우리 선조들은 12진법을 썼기 때문에 12라는 것은 최고의 숫자를 얘기함과 동시에 사연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고, 뿌가 넘을 고갠 세상이 어려워도 같이 해야하는 한고개 라고 얘기하고 있다.